Home>Reading Lists> 가나자와 히데유키

Reading Lists

가나자와 히데유키

일본에서 동아시아 고전이 실제로 살아온 모습, 이것이 한적(漢籍)과 동아시아 고전학의 한 축을 담당한 불전이 합쳐진 형태로 나타난 것이 구카이(空海)의 『상고시이키(三教指帰)』(岩波書店의 日本古典文学全集, 筑摩書房의 弘法大師空海全集 수록 외 다수)입니다. 제목의 ‘三教’ 즉, 유교, 불교, 도교의 교리를 가공의 등장 인물이 비교 설명하여 결론적으로는 불교의 우위를 설파하는 내용입니다. 구카이가 살았던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의 고대에 유•불•도교의 동아시아 고전이 읽히고 이용되면서 새로운 작품이 생성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이 계몽적인 내용에 힘입어 후대에도 널리 읽히며 동아시아 고전학의 입문서 역할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특히 일본 근세에는 『상고시키칸츄(三教指帰簡註)』, 『상고시키산포(三教指帰刪補)』와 같은 주석서가 다수 출판되어 『상고시이키』의 해설서 역할을 하며 더 폭넓은 독자층에게 고전을 알리는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고시이키』 서문의 첫 부분에는 “鱗卦•聃篇,周詩•楚賦”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인괘鱗卦’는 『역경(易經)』을,‘담편聃篇’은 『노자(老子)』를, ‘주시周詩’는  『시경(詩經)』을, ‘초부楚賦’는 『초사(楚辞)』를 가리킵니다. 유교 경전과 그 외의 서적에서 각각 산문과 운문을 대표하는 것이 합쳐진 것으로 이 표현에서 한적의 표현을 숙지하고 있었던 구카이의 고전에 대한 교양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 중 『초사』에 관해서는 고미나미 이치로(小南一郎)의 『초사(楚辞)』(筑摩書房, 1973년)를 참고 문헌으로 들고 싶습니다. 중원과는 다른 중국 남쪽 지방의 고대문화를 배경으로 하는『초사』의 난해한 어구를 매력적으로 풀이한 훌륭한 입문서입니다.

『상고시이키』와 같은 시기, 일본에서는 최초의 불교 설화집 『니혼료이키(日本霊異記)』가 편찬되었습니다. 불교 설화가 경전 속의 존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지역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수단이 되는 현상은 이미 중국에서 나타났습니다. 마키타 다이료(牧田諦亮)의 『육조고일관세임응험기  연구(六朝古逸観世音応験記の研究)』(平楽寺書店,1970년)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구카이라는 인물에 대한 입문서로는 다케우치 노부오(竹内信夫) 『구카이 입문:고닌<일본 연호810년~824년>의 모더니스트(空海入門──弘仁のモダニスト)』(筑摩書房,1997년)를 추천합니다. 구카이가 남긴 시문을 읽으면 구카이가 살았던 시공간에 근접하는 듯한 고전 연구의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구카이에게 있어서 고전, 특히 인도 범어 연구의 중요성을 알기 위해서는 동저자의 논문 「구카이와 범어(空海と悉曇)」(『比較文学研究』56, 1989년)를 함께 읽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편 일본 중세의 동아시아 고전학을 대표하는 책으로 이치조 가네요시(一条兼良, 1402~81)의 『니혼쇼키산소(日本書紀纂疏)』(天理図書館善本叢書 수록, 八木書店, 1977년)를 들 수 있습니다. 이 책은『니혼쇼키』 신화편(神代巻)의 주석서로 『니혼쇼키』가 신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유교, 도교, 불교의 가르침에 벗어나지 않는다는 확신 하에, 한적과 불전을 망라한 인용에 근거하여 주석을 단 책입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그러한 인용들이 반드시 직접 원전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예를 들면, 『태평어람(太平御覧)』이나 『사문유취(事文類聚)』, 불전으로는  『종경록(宗鏡錄)』이나 『번역명의집(飜譯名義集)』과 같은 유서(類書), 사전 등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외에도 사전류를 참조할 때에는 『고금운회거요(古今韻會擧要)』와 같은 송학(宋學)과 선학(禪學)에 관한 다양한 주석서들을 이용하고 있어 일본 중세 지식의 모습을 여러 가지 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니혼쇼키산소』의 이러한 고전 이용방법은 아직도 발굴의 여지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점을 조사해 나가는 것이 일본에서 고전이 살아온 모습을 구체적으로 알아가는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이치조 가네요시가 대치했던 중세적인 지식의 지평-말하자면 밀교적인 것들-에 관해서는 최근 활발하게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는 고전은 이미 급진적인 변화를 이룬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측면을 대표하는 연구 성과로는 이토 사토시(伊藤聡) 『중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 신앙 연구(中世天照大神信仰の研究)』(法蔵館, 2011년), 아베 야스로(阿部泰郎) 『중세 일본의 종교 텍스트 체계(中世日本の宗教テクスト体系)』(名古屋大学出版会, 2013년), 오가와 도요오(小川豊生) 『중세 일본의 신화•문자·신체(中世日本の神話・文字・身体)』(森話社,2014년) 등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는 이러한 고전과 그것이 살아온 모습을 마주하는 즐거움은 실제 서적, 즉 사본(寫本)이나 판본(版本)을 직접 접하는 것에 대한 즐거움이기도 합니다. 고전 서적 조사의 달인 야마모토 노부요시(山本信吉)씨는 『고전 서적이 말하는 책의 문화사(古典籍が語る書物の文化史)』에서 그러한 사물로서의 고전을 다루는 매력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일독을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