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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동아시아 고전학의 방법 제61회
『「국서」의 기원』을 둘러싸고

일시
2020년2월21일 (금) 14:30
회장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 18호관 1층 미디어라보2
강사
시나다 요시카즈[品田悦一] (도쿄대학), 사이토 마레시[齋藤希史] (도쿄대학)

기본정보

개요

시나다 요시카즈・사이토 마레시 공저 『「국서」의 기원 ― 근대 일본의 고전편성』(신요샤, 2019년)의 출판기념강연회 「『「국서」의 기원』을 둘러싸고」를 개최합니다. 강연 제목은 아래와 같습니다.

시나다 요시카즈「「알리다(知らす)」와 「통치(統治)」」
사이토 마레시「문체의 사정(射程)」

사회:다무라 다카시 (도쿄대학)

주최

가켄(科研) 프로그램「국제협력에 의한 동아시아 고전학의 차세대 전개──문자세계의 프론티어를 시점으로」

당일레포트

 시나다 요시카즈[品田悦一], 사이토 마레시[齋藤希史] 공저 『「국서(国書)」의 기원 - 근대 일본의 고전 편성」(신요샤, 2019년)의 출간을 기념하여 시나다 요시카즈 선생님을 초청하여 강연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책은 메이지15년(1882)에 설치된 도쿄대학 문학부 부속 고전강습과의 설치 경위와 개편 과정에 초점을 맞추면서, 근대 국가 체제의 형성기에 있던 일본에 있어 화한(和漢)의 고전 및 그 말이 어떻게 이용되었는지를 논한 것으로, 이번 강연회에서는 그 논의의 연장선에 있는 주제에 대한 발표가 이루어졌습니다.
 
 시나다 선생님의 발표는 제국헌법 제1조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에서 「통치」에 대한 『겐포기게(憲法義解)』의 해석이 고전강습과의 성과로 이해된다는 점을 보이고, 『「국서(国書)」의 기원』에서 제시된 고전강습과의 설치와 제국헌법의 제정과의 관계를 더욱 명확히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나다 선생님은 우선『겐포기게』의 문안을 정리했다고 여겨지는 이노우에 고와시(井上毅)가 「통치」를 『고지기』 구니유즈리의 단(国譲りの段)에서 볼 수 있는 「알리다(知らす)」와 대응시킴으로써, 나라 상태를 알고 있는 것이 「통치」라고 하는 해석을 나타낸 것, 그에 따라 군민공치에 근거한 입헌주의 체제와 「통치」하는 사람으로서의 천황을 양립시키고자 도모한 것을 논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노우에 고와시에게 『고지기』의 기술을 교시한 것이 고전강습과 출신의 이케베 요시카타(池辺義象)였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국회를 개설한 칙유발포와 군주제 탈피를 설파한 가토 히로유키(加藤弘之)의 『고쿠타이신론(国体新論)』의 절판, 가토가 총리를 맡고 있던 도쿄대학의 고전강습과 설치가 연속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고전 강습과가 제국 헌법체제 구축에 종사하는 인물을 배출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임을 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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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토 선생님의 발표는 모즈메 다카미(物集高見)의 논고를 중심으로 메이지시대의 「문체」나 「문맥」을 둘러싼 논의를 다루고, 근대 일본에서 문의 형태가 국가체제의 아날로지나 메타포로 파악되게 된 것을 논한 것이었습니다. 사이토 선생님은 우선 「문체」라고 하는 말이 「담화체」와 「문장체」, 「화문체」와「한문체」처럼 문장의 스타일을 말하는 것으로 메이지 이후에 활발하게 사용된 점, 「문맥」 도 역시 메이지 이후에 많이 사용된 말로서, 말이 사용되는 시대나 지역을 나타내는 것이었다는 점을 논하였습니다. 이어서 모즈메가 「태고」의 문맥과 「중고」의 문맥, 혹은 「한문맥」처럼 문맥을 변별하여 문장을 쓸 필요성을 설파한 점, 말을 해부한다는 관점에서 대우표현이 없다는 훈독체의 문체적 특성을 찾아내고 그것을 결점으로 간주한 점, 한편 모즈메가 결점으로 간주한 그 특성에 따라 근대 훈독체는 공적인 공간을 만드는 문체가 되어 새로운 문맥을 형성하게 되었음을 지적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모즈메 이후의 전개로서 특정 문맥을 골라낸다는 사고방식을 대신하여 다양한 문맥을 포섭한다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으로 되었음을 상위 개념으로서의 「미문(美文)」을 제창한 다야마 가타이(田山花袋)의 『비분사호(美文作法)』를 예로 들면서 「국서」로서의 『만요집』도 역시 그와 같은 사고 위에서 성립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논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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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의 시간에는 도쿠모리 선생님이 보편적인 「통치」의 일례로서 「알리다(知らす)」가 나타났을 가능성을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시나다 선생님은 일본의 군주제가 서구의 군주제와는 다르게 인식되었던 점 등을 들어, 일본 고유의 「통치」가 「알리다」에 의해 제시되었던 사실을 설명했습니다. 또한 도쿠모리 선생님은 고전강습과와 에도의 국학과의 연속성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두 선생님은 고전강습과에서는 메이지 국가가 국학을 이용했다고 하는 성격이 강하고, 단순하게 연속하는 것이라고는 보기 어렵다고 답변하였습니다.
 이후 참가자들이 함께 논의하여 모즈메가 이상으로 삼았던 국가의 문체는 어떠하였는가라는 점과 이치코(一高) 교육과정의 형성과 고전강습과의 관계, 고대의 「나라」와 근대국가와의 차이 등에 대하여 논하였습니다.
 
 오늘날에는 「고전」이라고 하면 과거의 유물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강연회에서 나타난 것은 현재 및 미래와 깊이 관련되는 것으로서의 고전의 모습이었습니다. 새로운 국가의 건설과 그에 따른 새로운 말의 창출이 요구된 메이지 시대에는 과거로부터 축적된 말이 이념을 제시하는 근거로서 혹은 실제적인 자원으로 이용되었다는 것을 배우고, 근대 나아가서는 현대와 고전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깊이 느꼈습니다.
 
(도쿄대학 박사과정 도비타 히데노부)